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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프레드릭 배크만 신작 불안한 사람들, 어른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

보고톡톡 2021. 9. 1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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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Fredrik Backman 지음>, 이 소설은 책의 표지가 눈에 띄길래 '골라 잡았다'. 2012년 데뷔해 <오베라는 남자>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잘 알려진 스웨덴 출신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이다. 창밖의 불꽃놀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토끼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는 참 마음에 드는 노랑과 파랑이 적절히 배치된 표지, 마치 동화책을 집어 드는 기분으로 책의 첫 페이지를 열어봤다.

불안한 사람들 표지(이미지 출처=예스이십사)

근데 이게 웬걸 상당히 난해하게 느껴졌다. 내용이 복잡한 건 아니고(단순하다) 작가의 머릿속이 정리가 안된 건지 아님 일부러 두서없이 보이도록 쓴 것인지(후자 같다), 아무튼 순식간에 읽어 내려가긴 어려웠다. 잠시 방심하면 무슨 얘긴지 이해하는데 실패했고 다시 눈길을 몇 줄 위로 옮겨가는 식으로 책 보기를 이어갔다. 며칠 띄엄띄엄, 마침 바쁜 시즌이어서였을까. 책상 위에 올려둔지 보름이나 걸려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됐다.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책을 붙들고 있으면 괜히 불안해진다. 불안했다.

불안한 사람들, 책읽어주는 보고톡톡

사실 이 소설은 뒷이야기가 계속해서 궁금해지는 흥미로운 소재를 갖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나 말투, 면면이 우스꽝스러운 부분도 무시할 수 없지만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그들 대부분이 우리들(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문젯거리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트라우마, 심리적인 혹은 경제적인, 때론 관계적인 '불안' 말이다. 결국 이건 대부분 제목에서 유추하였겠듯이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다.

배경은 새해를 이틀 앞둔 스웨덴의 한 작은 마을이다. 그리고 은행털이범이 나온다.

영화에 나오는 치밀하거나 우왁스러운 강도 같은 인물은 아니고 엉성하고 멍청할 것만 같은 인물이다. 은행을 털러 가서 은행 직원에게 6천5백 크로나(스웨덴 화폐)를 요구한다. 이건 우리 돈으로 약 88만 원이다. 은행까지 털러 가서 굳이? 왜? 그런데 하필 이 은행은 그마저도 없는, 아예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 은행이다. 이건 그가 어떤 이유에서였든 필요로 했던 한 달치 임대료였다.

오픈하우스에서 인질범이 된 은행털이범

은행원 런던(이건 이름이다)은 은행강도를 바보 취급하며 현금 없는 은행에 왜 왔냐는 식으로 대꾸하고, 당황한 은행강도는 밖으로 도망 나갔다가 아파트 매매를 위해 열린 오픈하우스에 들어가게 되고 또 얼떨결에 인질범이 되고야 만다. 더 웃긴 건 인질이 된 사람들도 인질범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아주 난감한 상황.

알고 보니 이 은행 강도이자 인질범은 참 불쌍하게까지 느껴진다. 배우자에게 배신당하다 못해 이혼까지 당했다. 거처도 없이 이혼당했고 무일푼 실업자인 데다 소중한 딸까지 못 볼 상황에 처해있는 바보같이 불쌍한 인물이다.

사라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은행 애널리스트이자 고위급 임원으로 상당히 부유하고 콧대 높고 스마트하면서 또 굉장히 안하무인격인 인물이다. 이 여자는 과거의 어떤 사건에서 비롯된 심리적,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다. 사라가 자신의 심리상담사와 나눈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그녀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대목이다.

"...(중략)... 돈을 어떤 데 쓰세요?”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사는 데 쓰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비싼 음식점은 테이블 간 간격이 넓어요. 비행기 1등석은 가운데 자리가 없고요. 특급 호텔에는 스위트룸 고객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 따로 있죠. 지구 상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이 남들과의 거리예요.”

(불안한 사람들 145p 대화中)

불안한 사람들, 이 소설은 우리들의 이야기인것만 같다

상당히 그럴듯한 얘기라고 느낀 건 나뿐일까. 누가 왜 돈을 버냐고 물어보면 한번 써먹어야겠다(피식).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결국 돈이라는 얘긴데, 그게 참 그럴듯한 말처럼 느껴진다.
아무튼 사라도 인질 중 한명인 셈이다. 이 소설에는 은행을 털려다 인질범이 된 멍청한 인물과 인질들 그리고 경찰 두 명과 상담사 한 명이 등장한다.

서두에 밝힐 걸 그랬나. <불안한 사람들>에 대한 '스포'와 같은 아무 짝에 쓸모없는 일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우선 부자관계인 경찰 두명이 등장한다. 이들 중 아들은 어릴 적 다리 위에서 떨어져 자살한 사람을 미처 구해내지 못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오픈하우스에 왔다가 인질이 된 '인질 같지 않은 인질'들을 보면, 앞서 언급한 은행 간부 사라, 딸을 대신해 집을 보러 온 아흔 살의 할머니가 그리고 두 쌍의 부부가 있다. 아참 이 부부 중 한 쌍이 고용한 아르바이트 배우 한 명이 더 있다.

사라진 인질범, 어디로 간 것일까?

이야기의 발단은 이 멍청하고 불쌍한 인질범이 경찰들이 오픈하우스에 들이닥친 순간 감쪽같이 사라지는데서부터 비롯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질이었던 이 사람들은 경찰의 조사에도 하나같이 전부 인질범의 행방이나 정보를 제공하는데 '뜨뜻미지근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이 소설은 인질들의 배경이나 각자가 가진 사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은행 간부 사라가 심리적인 문제를 갖게 된 배경이 된 과거라든지 다른 젊은 부부의 사연, 남편을 잊지 못하는 90세 할머니, 은퇴한 부부의 사연 등 그 그 비중이 상당한 편이다. 인질범의 불행한 사연도 만만치 않게 흘러나온다. 인물들 간의 관계는 삐걱거리면서 시작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대체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다.

불안한 사람들, 불완전한 사람들

그 관계회복의 과정이 작가의 노림수, 보는 이들이 감동적인 요소로 삼을 수 있는 장치가 아닌가 싶다. 저마다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이 우연히 오픈하우스라는 공간에서 꼬인 인연으로 모여 인질과 인질범이 되는 설정. 하지만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회복해가는 삶의 온도, 따뜻한 위로에 대해 다룬 소설이라고 <불안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요약하고 싶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고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게 수월하진 않은 듯하다.

모두가 어른이 된다. 그리고 모두가 '어른이'들이다. 매사 실수투성이고 꼬이는 일은 많고 감정조절은 안되고 저마다 불만과 강박과 문젯거리를 껴안고 산다. 그런데 우습게도 자존심만은 '쩌는' 그런 어른이들이다. 물론 만약 완벽한 어른이라면 이 소설이 재미없고 어이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프레드릭 배크만이 세상 모든 부족한 어른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 같은 작품, <불안한 사람들>은 곧 영화화될 예정이라고 한다. 굉장히 흥미롭게 본 소설이 영화로는 또 어떻게 해석되어 재탄생할지 무척 궁금하다.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소설, 불안한 사람들

불안한 사람들 Anxious People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다산책방 펴냄(2021.05.14)

<오베라는 남자>로 1,300만 독자를 사로잡은 프레드릭 배크만의 장편소설
"오늘도 꼬여버린 하루, 당신만 그런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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