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도시 악어에 대한 꽤 솔직한 이야기
그림책을 구입해보긴 처음이네. 표지에 그려진 악어의 푸릇한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다. 그저 <도시 악어>라는 제목을 보니 구슬픈 기분 그리고 궁금함이 고개를 들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악어 한 마리가 슬픈 눈동자를 끔뻑끔뻑거리며 도시 이곳저곳을 방황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책장을 한 페이지 넘기니 예상했던 그 악어가 세모난 눈을 뜨고 어딘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나는 악어야.
(응. 딱 봐도 알겠어)
도시에 사는 악어.
(왜 도시에 사니?)
내가 원해서 여기에 온 건 아니야.
(Sorry..)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살아가야 하지.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나도 모르게 악어와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다. 난생처음 그림책을 보겠다고 꼬깃해진 동심을 끄집어내 본 셈이다.
'도시 악어'는 원해서 온 것은 아니지만 도시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 녀석 토마토를 좋아하고, 햇볕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녀석이 아이에게 건넨 토마토는 덩그러니 바닥에 나뒹군다. 덥석 건네받기엔 아무래도 녀석의 손이 무서워 보이긴 했다.
하수구 틈새로 웅크리듯 숨어 앉은 도시 악어의 모습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사람들과 악어가 설 자리는 그림에서처럼 두터운 선으로 분리될 수밖에 없는 거겠지.
도시 악어는 나름대로 사람들과 섞이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봤지만, 뭔가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피부관리며 치아교정에.. 꼬리까지 성형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도시 악어도 꼬리는 도저히 자를 수 없었나 보다.
휴우.. 그래도 다행이다. 내가 너의 몸 구조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만, 너에게 꼬리는 몸통이잖니.
그림을 봐도 알 수 있듯 악어의 꼬리는 촘촘한 척추로 이뤄져 있다. 저걸 자르면? 으앗!
참고로 악어는 헤엄칠 때 꼬리를 추진 기관으로 사용한다. 이게 없으면 악어도 물속에서 술병이 될 수 있는 거다.
아무튼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시에 어울리지 못한 채 홀로 쓸쓸히 웅크린 도시 악어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과연 악어는 이 고층 빌딩 숲 속에서 자신을 친구로 맞이해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헛된 바람도 잠시였을 뿐. 악어는 악어답지 않게 스스로 두려워하던 물속으로 풍덩 빠지고 만다. 게를 피하려다 물가에서 발을 헛디딘 것이다.
이 그림책 《도시 악어》 어쩌면 단순해 보이는 그림과 색채뿐인데 묘한 매력이 있다. 이런 그림, 문득 아이들은 어떻게 여길지 궁금해졌다.
아참, 이 그림책을 구입하면 루리 작가의 그림을 담은 컬러링 북도 함께 받을 수 있다. 요즘은 나를 포함한 많은 어른들이 컬러링북에 색칠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곧 시간 날 때 실력 발휘 좀 해볼 테다.
아참! 그러는 사이 우리..(그새 정이 든) 도시 악어는 깊은 물속으로 빠져 가라앉고 있다. 그런데 난 그림이 예쁘다는 소리나 하고 있었으니..
사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도시 악어'를 본 시간보다 '도시 악어'에 대해 쓴 시간이 몇 곱절은 됐겠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 악어'와 같은 고민과 괴로움을 지닌 채 하루를 보냈을 듯하다.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헤매는 일 말이다.
그래. 사실 답은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 왜 실행을 못하고 있느냐' 이런 식으로 누굴 닦달하거나 보채지 말자.
누군 몰라서 그렇게 머뭇거리고만 있겠나. 다 그만한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리고 시간이 걸릴 뿐 이내 곧 자기 자릴 찾길 바란다. 응원하겠다.
'글라인'과 이화진 작가가 글을 썼다. '글라인'은 잘 알려진 JTBC 「낭만닥터 김사부 1, 2」를 비롯해 「부부의 세계」, SBS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등 다수의 유명 작품을 집필한 곳이다. 이화진 작가는 2022년 2월 JTBC에서 방영되는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그리고 「부부의 세계」 보조 작가로 현재 OTT 드라마 기획 및 집필 중이다.
그림을 그린 루리 작가는 2020년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로 '제26회 황금도깨비상(그림착 부문)'을, 장편 동화 「긴긴밤」으로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한 이 분야 핫한 분인듯하다. 「긴긴밤」은 아직 본 적 없는데 평이 좋더라.'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