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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도시 악어에 대한 꽤 솔직한 이야기

보고톡톡 2022. 2. 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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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구입해보긴 처음이네. 표지에 그려진 악어의 푸릇한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다. 그저 <도시 악어>라는 제목을 보니 구슬픈 기분 그리고 궁금함이 고개를 들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악어 한 마리가 슬픈 눈동자를 끔뻑끔뻑거리며 도시 이곳저곳을 방황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책장을 한 페이지 넘기니 예상했던 그 악어가 세모난 눈을 뜨고 어딘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도시 악어의 한 페이지. 악어의 슬픈 눈


나는 악어야.
(응. 딱 봐도 알겠어)
도시에 사는 악어.
(왜 도시에 사니?)
내가 원해서 여기에 온 건 아니야.
(Sorry..)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살아가야 하지.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나도 모르게 악어와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다. 난생처음 그림책을 보겠다고 꼬깃해진 동심을 끄집어내 본 셈이다.

도시 악어의 한 페이지. 본의 아니게 도시에 오게된 악어
도시 악어의 한 페이지. 본의 아니게 도시에 오게된 악어


'도시 악어'는 원해서 온 것은 아니지만 도시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 녀석 토마토를 좋아하고, 햇볕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녀석이 아이에게 건넨 토마토는 덩그러니 바닥에 나뒹군다. 덥석 건네받기엔 아무래도 녀석의 손이 무서워 보이긴 했다.

하수구 틈새로 웅크리듯 숨어 앉은 도시 악어의 모습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사람들과 악어가 설 자리는 그림에서처럼 두터운 선으로 분리될 수밖에 없는 거겠지.

도시 악어의 한 페이지. 하수구 틈에 웅크린 악어
도시 악어의 한 페이지. 하수구 틈에 웅크린 악어


도시 악어는 나름대로 사람들과 섞이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봤지만, 뭔가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피부관리며 치아교정에.. 꼬리까지 성형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도시 악어도 꼬리는 도저히 자를 수 없었나 보다.

휴우.. 그래도 다행이다. 내가 너의 몸 구조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만, 너에게 꼬리는 몸통이잖니.

도시 악어의 한 페이지. 다행히 꼬리를 자르지 않은 악어
도시 악어의 한 페이지. 다행히 꼬리를 자르지 않은 악어


그림을 봐도 알 수 있듯 악어의 꼬리는 촘촘한 척추로 이뤄져 있다. 저걸 자르면? 으앗!

 

참고로 악어는 헤엄칠 때 꼬리를 추진 기관으로 사용한다. 이게 없으면 악어도 물속에서 술병이 될 수 있는 거다.

아무튼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시에 어울리지 못한 채 홀로 쓸쓸히 웅크린 도시 악어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과연 악어는 이 고층 빌딩 숲 속에서 자신을 친구로 맞이해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헛된 바람도 잠시였을 뿐. 악어는 악어답지 않게 스스로 두려워하던 물속으로 풍덩 빠지고 만다. 게를 피하려다 물가에서 발을 헛디딘 것이다.

도시 악어의 한 페이지. 깊은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악어
도시 악어의 한 페이지. 깊은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악어


이 그림책 《도시 악어》 어쩌면 단순해 보이는 그림과 색채뿐인데 묘한 매력이 있다. 이런 그림, 문득 아이들은 어떻게 여길지 궁금해졌다.

아참, 이 그림책을 구입하면 루리 작가의 그림을 담은 컬러링 북도 함께 받을 수 있다. 요즘은 나를 포함한 많은 어른들이 컬러링북에 색칠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곧 시간 날 때 실력 발휘 좀 해볼 테다.

도시악어 컬러링북의 한 페이지
도시악어 컬러링북의 한 페이지

 

아참! 그러는 사이 우리..(그새 정이 든) 도시 악어는 깊은 물속으로 빠져 가라앉고 있다. 그런데 난 그림이 예쁘다는 소리나 하고 있었으니..

사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도시 악어'를 본 시간보다 '도시 악어'에 대해 쓴 시간이 몇 곱절은 됐겠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 악어'와 같은 고민과 괴로움을 지닌 채 하루를 보냈을 듯하다.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헤매는 일 말이다.

그래. 사실 답은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 왜 실행을 못하고 있느냐' 이런 식으로 누굴 닦달하거나 보채지 말자.
누군 몰라서 그렇게 머뭇거리고만 있겠나. 다 그만한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리고 시간이 걸릴 뿐 이내 곧 자기 자릴 찾길 바란다. 응원하겠다.


<도시악어> 글 글라인·이화진, 그림 루리
<도시악어> 글 글라인·이화진, 그림 루리

 

'글라인'과 이화진 작가가 글을 썼다. '글라인'은 잘 알려진 JTBC 「낭만닥터 김사부 1, 2」를 비롯해 「부부의 세계」, SBS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등 다수의 유명 작품을 집필한 곳이다. 이화진 작가는 2022년 2월 JTBC에서 방영되는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그리고 「부부의 세계」 보조 작가로 현재 OTT 드라마 기획 및 집필 중이다.

그림을 그린 루리 작가는 2020년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로 '제26회 황금도깨비상(그림착 부문)'을, 장편 동화 「긴긴밤」으로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한 이 분야 핫한 분인듯하다. 「긴긴밤」은 아직 본 적 없는데 평이 좋더라.'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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