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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몬드 작가 손원평이 우리에게 물은 것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나'

보고톡톡 2022. 3. 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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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도토리 읽어봐요. 읽기 좋던데" 그랬더니 아내가 '책 제목은 아몬드 아니야?'라고 한다. 아. 아몬드 맞다. 나에게 책 보는 일은 일종의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는 의미인데, 그 목적에 딱 들어맞는 힐링 포인트를 선사해준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도토리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공감에 둔해진 마음을 '쿵' 터치하는 환기력 높은 소설이다. 출판평론가 한기호는 이 소설 아몬드를 '우리 사회의 공감 능력을 크게 고양시킬 소설, 한국형 영 어덜트 소설의 등장'이라고 소개했다. 읽고 나서 보면 딱 알맞은 소개 문구였다는 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몬드의 줄거리 중 일부를 소개하겠지만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다.

아몬드(펴낸 곳 창비, 초판 1쇄 2017.03.31)
우리는 모두 머릿속에 아몬드를 갖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이 윤재도 아몬드를 갖고 태어났다. 여기서 아몬드는 편도체를 의미한다.
「편도체(扁桃體, Amygdala)는 대뇌변연계에 존재하는 아몬드 모양처럼 생긴 뇌 부위인데, 감정을 조절하고 공포 및 불안에 대한 학습 및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편도가 제거될 경우 공포나 불안 반응을 유발하는 상황들을 학습하지 못한다(출처:위키백과).」

편도체를 영어로 amygdala라고 하는데, 이는 라틴어인 almond에서 유래했다. 이제 이 소설의 제목 아몬드에 대해서는 설명이 된 듯하다.

 

안타깝게도 윤재는 정상적인 크기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크기의 편도체를 갖고 태어났다. 일반적으로 편도체의 크기는 지름 약 2 센티미터 정도. 하지만 윤재가 가진 편도체는 이보다 크기가 훨씬 작았다는 거다. 윤재는 편도체가 비정상적으로 작아서 편도체로부터 비롯되는 주요 기능 그중에서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이다. 기쁨이나 설렘을 느낄 수 없고, 공포나 분노, 슬픔, 두려움 등 아무런 감정 변화 없이 세상을 보이는 그대로 곧이곧대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윤재는 웃고 울지 않는, 웃거나 울 수 없는 아이로 자라난다.

편도체의 주요 핵 세가지(글 강윤정, 그림 차귀령)
편도체의 주요 핵 세가지(글 강윤정, 그림 차귀령)


참고로, 이에 대해 손원평 작가가 서두에 알려준 내용이 있다.
일렉시티미아(감정 표현 불능증): 1970년대 처음 보고된 정서적 장래로, 아동기에 정서 발달 단계를 잘 거치지 못하거나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 혹은 선천적으로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경우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경우에는 감정 중에서도 특히 공포를 잘 느끼지 못한다. 다만 공포, 불안감 등과 관련된 편도체의 일부는 후천적인 훈련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런 감정 표현 불능증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주변에서는 이런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할까. 머릿속에 이런 질문을 입력하고 조금만 생각을 이어 보면 다음 전개는 어두운 조명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윤재는 인간의 감정을 책이나 글, 말로 배워나간다. 상대방이 웃으면 똑같이 미소를 지어라. 누군가 화를 내면 미안하다고 말해라. 차가 다가오면 부딪히지 않도록 비켜서야 한다. 등등..

윤재는 엄마와 외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부족한 감정 기능을 이론적으로 채우며 성장하지만 그 결과가 일반적인 사람의 수준과 같을 수는 없었다. 상황적인 경우의 수를 늘려 가며 필요한 행동 패턴을 익혀본들, 사람이 성장할수록 접촉하게 되는 세상은 더 넓고 예측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이론적인 학습만으로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윤재는 학습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대처 방식으로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윤재는 괴물 같다는 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누군가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패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모르겠지만.

항상 무표정이고 말수도 없는 윤재. 정확한 시점인지 모르겠지만 윤재는 중학교 3학년 때쯤에 큰 일을 겪게 된다. 자신의 생일이자 크리스마스이브 날이었다. 이 날 윤재와 함께 있던 엄마와 외할머니가 정체모를 인간에게 길에서 이유 없는 칼부림을 당한다. 무표정에 말수도 없는 아이. 윤재는 이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공포? 놀라움? 두려움? 예상했던 대로 윤재에게는 이런 감정이 아닌 물음표가 생긴다. '왜 모두가 지켜만 보고 도와주지 않지?'

혼자가 된 윤재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만나게 된 친구 '곤이'

마른 체구이지만 소위 '깡'이 센 곤이는 불우한 성장기를 겪었다. 곤이는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 강함을 선택한 아이였다. 곤이는 때리고 부수는 등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믿으며 자란 아이다. 곤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문제아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윤재는 그런 곤이와 어떻게 친구가 되었을까. 친구에 대해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면서도 우정이라는 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튼 윤재는 곤이를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단순하고 투명했다'라고 표현한다.

윤재의 또 다른 친구 '도라'

달리기를 좋아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뛸 수 없는 아이 도라는 윤재의 '여자 사람 친구'가 된다. 곤이도 그렇지만 윤재와 도라의 친구 관계는 더욱 상상하기 어려웠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지 못하는 윤재가 여자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사랑의 감정은 일방적인 방향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아몬드의 모든 스토리는(도토리라고 쓸 뻔했다) 윤재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윤재의 눈으로 상황과 인물을 묘사하고 설명한다. 재밌는 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윤재의 시선에서 쓰인 글이지만 풍부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아이러니하다. 윤재의 머릿속에 감정이 없다고 해서 이 아이를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까지 건조해지는 것은 아니다. 손원평 작가의 문체를 정확히 뭐라고 규정하지는 못하겠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와 독자 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매력을 지녔다. 부럽다.

소설의 중후반에 닿으며 윤재의 아몬드 아니 편도체가 '띠용'하고 갑자기 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런 소재의 소설을 읽을 때 독자가 주인공에게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인 연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말 윤재의 아몬드가 갑자기 커질 수는 없을까. 그럼 너무 소설스러워지려나.

내가 본 아몬드는 인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아몬드는 당신으로 하여금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할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너무 거창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늘 일과를 잠시만 돌아봐도 이 질문의 무게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부연 설명하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에게, 우리 사회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해 묻는 손원평 소설 아몬드
인간다움에 대해 묻고 있는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


2017년에 출판된 소설.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을 장식해온 소설인데 이제야 봤다. 소설 아몬드는 현재 뮤지컬과 연극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손원평 작가의 다른 작품 <서른의 반격>도 곧 찾아보려고 한다. 요즘 아몬드처럼 따뜻함과 흡입력 있는 글이 내 부러움과 질투를 많이 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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