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이끄는 부드러운 힘 넛지(Nudge)
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혹은 '주위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단어인데, 이 책에서 넛지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이란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일까. 어렵게 말하는 건 딱 잘라 말해 '싫다'
우리는 살면서 매일 크고 작은 수많은 의사 결정을 하게 되는데, 우리는 종종 좀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도록 이끌 방법이 없을지 고심하게 된다. 저자는 이 고민에 대한 해법으로 '넛지'를 이용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넛지'의 활용방법과 효과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넛지가 미국에서 첫 출판된 것은 2009년 2월이다. 주문 목록에 담아둔지 무척 오래되었는데 최근에서야 구입했다. 즐겨 찾는 빌 게이츠의 추천 도서목록 중 하나이고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Richad H. Thaler의 저서여서 한번 꼭 읽어보고는 싶었지만 경제학자가 쓴 책은 늘 선택 앞에 망설임을 준다. 아무튼 현재 시카고 경영대학원에 재직 중(1995~)인 리처드 세일러가 하버드 로스쿨 교수 캐스 선스테인과 공동으로 집필한 《넛지》(Nudge)는 행동경제학을 바탕으로 하며, 주로 공공기관이나 민간 단체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지에 대해 다룬다.
두 공동저자들의 집필 배경이나 동기를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빌려본다(이게 이 책의 집필 동기로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한다. 일상적인 편견에 민감하고 이로 인해 교육, 금융, 건강관리, 대출과 부채관리, 심지어는 지구에게까지 당황스러운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경제학자가 쓴 책이다보니 경제학 용어가 많이 나온다. 경제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책일 수 있다. 꼼꼼히 봐야 전반적인 내용 이해가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우리의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넛지'라는 것은 말 그대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이미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라는 생소한 용어가 있다. 이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드는 사람이다. 우리 주변에도 무수히 많은 선택 설계자가 있다. 투표용지를 디자인하는 사람도, 환자에게 다양한 치료법을 안내하는 의사도, 자녀에게 선택 가능한 교육 방식을 설명하는 부모도, 상품 혹은 서비스를 판매하는 세일즈맨도 모두 선택 설계자이다.
이 선택 설계자에 의해 짜인 정황 혹은 맥락에 의해 사람의 행동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가장 쉽게 들 수 있는 예가 있다. 남성용 화장실 소변기에 그려진 파리(최초 고안자는 Aad Kieboom이라는 사람이다)의 효과를 모두가 알 것이다. 이 파리가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을 80%나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쯤 되면 넛지(nudge)를 행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넛지'인가
저자는 인간의 행동방식을 현격하게 변화시키는 모든 요소를 넛지라고 지칭하고 있다. 여기서 '개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이것은 결국 인간이 보다 나은 선택이나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개입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대부분 인간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정부의 정책에까지 이 넛지의 개념을 넓혀보면 이 개입이라는 것이 타당한가에 관한 사람들의 의견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 때문에 넛지의 힘이 민간의 영역에서는 환영받을 수 있겠지만 정부에 의해 시도될 때에는 거국적인 반대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 부분에 이르는 철학적 혹은 윤리적 쟁점으로 이야기가 확대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독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넛지를 해야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바라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인트로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일 뿐이라는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흡연, 음주, 과식과 같은 비합리적이지만 끊기 힘든 유혹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는 이들이 다름 아닌 대다수 인간이다.
인간은 거기다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 개별 지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선택되는 옵션, 즉 기본 값)을 따르려는 성향까지 갖고 있다. 적절한 디폴트 옵션이 설정된다면 저축률 증대, 의료보장 개선과 같은 인간을 위한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얘길 읽다 보면 독자 스스로도 넛지가 타당하고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심리적 동요가 마음에 요동칠 것이고, 나 또한 그런 마음을 진정시켜가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제1부 인간과 이콘 - 우리는 천재인 동시에 바보라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주지시킨다.
제2부 돈 - 넛지가 우리를 더 부유하게 만들 수 있음을 저축 늘리기와 투자하는 방법까지 설명하며 안내한다.
제3부 사회 -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넛지가 활용될 수 있음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도출해준다.
제4부 여타의 넛지들과 여러 가지 반론들 - 앞에서 얘기를 시작하려다가 그만둔 넛지에 대한 여러 가지 반론들을 짚어보는데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넛지 뒤편에 경북대학교 경제학과 최정규 교수의 '업그레이드된 행동경제학 《넛지》'라는 서평이 담겨 있는데,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해주었다고 판단되어 일부 내용을 추려보았다.
P.421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서 그쳐버린다면 행동경제학의 메시지는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양가 없는 이야기에 그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고, 《넛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행동경제학자가 처음으로 내놓은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P.423~424
따라서 행동경제학에서의 발견으로부터 어떤 정책적 결론을 유도할 수 있을지는 계속 열려 있는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 《넛지》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혹은 자유주의적 온정주의)라는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생각하는 방식에 다양한 틀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이 넛지라는 것에 왜 그렇게 열광했는지도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매 장마다 빽빽한 글로 가득 찬 탓에 속독을 하며 진도 나가는데 바빴는데, 연말연시 휴일을 틈타 차분히 다시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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