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로봇의 눈으로 인간다움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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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클라라와 태양: 로봇의 눈으로 인간다움을 묻다

by 보고톡톡 2021.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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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가 2021년 사랑한 책 목록 5권(5 books I loved reading this year)중 하나로 소개하여 알게 된 영미소설이다.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인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2021년 펴낸 신간인 만큼 꽤 높은 기대감을 갖고 읽었는데, 역시 남달랐다.

·제목: 클라라와 태양(KLARA and THE SUN)
·지은이: Kazuo Ishiguro(가즈오 이시구로)
·출판일: 2021.03.02(한국어판 민음사 펴냄, 2021.03.29)

빌 게이츠의 서평은 다음과 같이 짤막했다.

로봇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몸이 아픈 어린 소녀의 '인공 친구'에 관한 이시구로의 소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책의 로봇은 악의 세력이 아니다. 대신 그들은 사람들이 일터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동반자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초지능 로봇이 있는 삶이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종류의 기계를 기술의 일부로 취급할지 아니면 그 이상으로 취급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출처=빌 게이츠의 블로그 GatesNote, 5 books I loved reading this year」

 

 

빌 게이츠 2021 겨울 홀리데이 추천도서 목록 5권

빌 게이츠는 매년 두세차례 자신의 블로그인 GatesNote에 휴가 기간 읽을만한 추천도서 목록과 책에 대한 서평을 소개한다. 2021년 겨울 Bill Gates가 소개한 책 다섯권의 목록과 그가 전달한 메시지를

aftertalktalk.tistory.com

 

2017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2021년 신작 클라라와 태양(KLARA and THE SUN)
가즈오 이시구로 신작 '클라라와 태양' 서평

 

이렇게 해가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는 운 좋은 날이면 나는 얼굴을 내밀어 해가 주는 자양분을 최대한 많이 받으려 했다.
「소설 <클라라와 태양> 클라라의 독백中」


소설은 인공지능 로봇 에이에프(AF, Artificial Friend)인 클라라의 1인칭 관점에서 전개된다. 애당초 초지능 로봇이란 존재는 인간이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 로봇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니 조금은 신선한 기분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아직 자신의 주인을 찾기 전인 에이에프들이 매장 쇼윈도를 통해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미래가 성큼 다가올 것만 같은 기분도 들더라. 클라라는 매장 내에 있는 다른 에이에프들에 비해 유난히 호기심이 더 많고(특히 인간에게) 관찰력도 뛰어난 편이었다.

클라라의 생김새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 듯하다. 상세한 묘사는 없었기에 내 나름으로는 15세 이하의 가녀린 소녀의 모습으로 클라라의 이미지를 그리게 됐다. 소설 속 에이에프에 대한 지나친 감정이입에 선을 긋고자 했을까. 작가는 곧 클라라의 신분 혹은 존재가치를 자각하게 하는 대화를 꺼내 든다.

 

"이번에는 내가 네 뜻을 맞춰 줬지만 다음에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고객이 에이에프를 선택하는 거지, 절대 그 반대가 아니야." 「소설 <클라라와 태양> 클라라와 매니저의 대화中」


클라라는 매장 쇼윈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친 몸이 아픈 소녀 조시와 약속을 나눴다. 조시는 자신이 곧 다시 와서 클라라를 데려가겠다고 말했고 클라라는 이에 동의한 것이다. 어느 날 다른 손님이 클라라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클라라는 조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매니저에게 '거부'의 눈빛을 보낸다. 이에 매니저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클라라에 조언을 건넨 것이다.

다행히(?) 조시와 클라라의 약속은 이뤄지게 된다. 하지만 조시의 에이에프가 된 클라라는 또 한 번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를 갖게 된다.

 

"아니, 그건 아냐. 네가 우리 얘기 듣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네가 릭 대신 그걸 할 수는 없어. 절대로 안 돼." 「소설 <클라라와 태양> 조시와 클라라의 대화中」


조시가 자신의 오랜 벗이며 함께 있는 미래를 약속한 릭과 자신의 에이에프인 클라라가 할 수 있는 것에 명확한 선을 그으며 한 말이다. 앞뒤 배경을 몰라도 이 얘기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일상을 돕고 심지어 당신의 생각에 공감할 줄 아는 초지능 로봇을 곁에 둔다고 해도 우리에게 그 로봇은 그저 로봇일 뿐이다. 우리는 로봇이 우리에게 절대로 해줄 수 없는 점이 있다고 여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로봇과 다른 '어떤'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게 무엇일까.

 

"전에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외로움을 선택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외로움을 피하려는 소망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소설 <클라라와 태양> 릭의 어머니 헬렌과 클라라의 대화中」


클라라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결국 외로움을 자처하는 모습을 감지하기까지 한다. 초지능 로봇이 이 정도 수준에 이르려면 이삼십 년은 더 걸리려나. 아무튼 이 점이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랏? 그런데 클라라는 사람의 그런 점 또한 이해하고 학습하고 있지 않은가.

참고로 《클라라와 태양》의 줄거리와 결말을 스포일링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인간은 현재의 인공지능(AI) 수준, 가령 세계 바둑 최고수를 무릎 꿇게 만드는 일과 같은 수준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초지능 로봇의 지능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래밍을 반복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제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자가 학습하는 경지에 이르지 않았는가. 곧 이 질문을 하게 될 때가 올 것만 같다. '도대체 인간이 로봇과 달리 더 할 수 있는 게 뭐야?'

어찌 되었건 소설 속 클라라는 몸이 아픈 조시의 친구 역할로 조시의 집에 들여진 셈이다. 만약 조시의 몸이 다른 아이들처럼 건강했다면 클라라의 효용가치는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일방적인 '필요에 의한 관계'는 지속될 수 있을까? 만약 클라라의 주인인 조시의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클라라는 어떻게 되는 걸까? 버려지게 되는 것일까?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클라라와 태양》을 읽었다. 이상하게도(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감정 흐름일 수도 있겠다) 클라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며 소설을 보고 있더라.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되뇌며 읽어나갔다. "초지능 로봇은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일 뿐이야. 로봇의 눈으로 본 인간은 어떤 모습인지에 초점을 두자."

자세한 줄거리를 이야기할 수 없음에 양해를 구하며 화제를 돌려 이야기의 매듭을 짓고자 한다.

빌 게이츠가 짧게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초지능 로봇과 함께 사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모르던 초반에는 '혹시 학대받는 초지능 로봇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 아닐까'
그러다가 '몸 아픈 어린아이가 초지능 로봇에게 어떤 큰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인가?'로 물음표를 그렸다.

절반의 책장을 넘길 때쯤엔 클라라가 사람 혹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클라라가 어떤 사물을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확히 이해가 안 가서였다. 상상력을 좀 더 키워야 하는 걸까. 아무튼 그러다가 이 대화 내용 일부를 보면서부터 눈초리가 진지해졌던 것 같다.

인류와 초지능 로봇이 함께하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클라라와 태양
초지능 로봇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다움은 무엇일까

 

"내가 카팔디를 미워하는 이유가, 마음 깊은 곳에 카팔디 말이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 카팔디의 주장이 실은 옳다고. 내 딸만의 고유한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현재 기술로 파악해 복사하고 전송할 수 없는 것은 없음을 과학이 확실하게 입증했다고..." 「소설 <클라라와 태양> 조시의 아버지 폴과 클라라의 대화中」


인간은 초지능 로봇을 만들어내는 조물주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큰 고민에 빠져들게 될 것 같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발명품에 의해 스스로의 위치나 자존감이 위태로워지는 상황 말이다. 이건 그때 입 밖으로 꺼내게 될 것만 같은 질문이다.

"그래서 나는 카팔디 같은 사람을 참을 수가 없어. 그 사람들이 하는 행동, 하는 말이 내가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나한테서 빼앗아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내 말이 이해가 가니?" 「소설 <클라라와 태양> 조시의 아버지 폴과 클라라의 대화中」


다행스럽게도(?) 이 소설의 결말은 초지능 로봇에 의해 인간이 존재적 위협을 받는 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 Kazuo Ishiguro는 자꾸만 반복해서 내게 묻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이 글을 봐준 여러분에게 똑같이 묻고 싶어 졌다.

 

"클라라와 함께 계속해서 해를 볼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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