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600일] 어제와 같은 오늘
본문 바로가기
T's history

[D-1600일] 어제와 같은 오늘

by 보고톡톡 2021. 7. 21.
반응형

D-1600일

오늘 밤이 오면 좀 더 일찍 잠을 청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지켜지지 않을 잠꼬대를 반복하며 7시 1분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닫는 찰라 그 틈새로 사라지는 아내의 눈인사는 오늘도 사랑스럽다. '늘 지금처럼 행복하게 해 줄 테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뒤엔 어김없이 또 이렇게 자문하는 습관이 있다. '어차피 그녀의 행복은 내가 아닌 아내 스스로가 만들어가고 있는 거다' 이건 스스로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는 일종의 '뇌새김' 같은 건데, 나의 출근 뒤에도 아내가 내게 늘 보여주는 모습처럼 밝은 무드 속에 있을지 아님 출근길 나만큼이나 어깨를 축 늘어뜨리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반 궁금증 반 뭐 그런 거다. 무척 아껴서다.

출근길 초입 4~5킬로미터 즈음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를 통과해 아메리카노 아이스 톨 사이즈 한잔을 받아 들고 순환로로 진입했다. Straw는 안 받으려고 했는데 오늘도 무심코 받아 들었다. 여기서부터 그야말로 무념무상이다. 이 상태로 운전하는 건 좋은 습관은 아니겠지만 매일 좌, 우, 앞, 뒤 교통 흐름에 촉각을 세우며 출근하는 사람은 없겠지. 사방도 그러한데 하늘색이나 날씨는 더욱 체감하기 어려운 출근길이다.

엊그젠가 퇴근길 저편에 쌍 무지개가 아주 그럴싸하게 그려져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참 그때 무지개가 생기는 이유를 'N'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여태 또 잊고 있었다. 늘 그런다.

무지개가 생기는 이유는?

무지개가 생기는 이유

무지개는 공기 중 물방울에 의해 햇빛이 반사, 굴절되어 나타나는 원호로 태양의 반대쪽에 비가 오면 나타난다. <출처=두산백과>

좀 더 와닿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몇 가지 환경과 시간적인 조건이 성립되어야 무지개를 볼 수 있는데, 우선 비가 조금 와야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햇빛이 조금 나야 한다. 일몰 무렵이 최적이다. 마지막으로 해를 등지고 이를 바라봐야 한다. 광학적인 설명은 검색 포털에서 상세하게 조회해보면 좋겠다.

그렇담 무지개는 퇴근 무렵에 보기 쉽겠다는 혼자만의 명제를 세웠다. 비를 좋아하지 않지만 무지개는 좋더라. 욕심일까.

C편의점과 조그만 카페를 지나쳐 회사 주차동으로 들어서니 오늘도 어김없이, 물론 나보다는 먼저 출근한 보안요원과 눈인사를 나눈 뒤 주차동 6층까지 올라가 빈 자릴 찾고 늘 그렇듯 아주 반듯하게 주차했다. 회사가 지난주부터 재택 근무율 50퍼센트 지침을 유지 중이라 주차장이 한산했으나 내게 6층은 그저 습관이다. 여기 주차해두지 않으면 퇴근길 차를 어디에 뒀는지 헷갈리기 일쑤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골프선수 애칭과 같은 '6'이다.

K커피를 두 봉 털어 넣어 진한 커피를 조제해 복용한 아침 8시 무렵 오늘도 어김없이 '열일'하고 일찍 퇴근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던 듯하다. 오늘 두 번째 커피다. 근래 출근은 쉬운데 퇴근이 어렵다. 글로벌 반도체 조달 이슈가 불거진 여파로 무척 고단한 반년을 지내왔다. 오늘도 보나 마나일 거다.

일단 사내 메신저에 '나의 상태'를 '다른 용무 중'으로 설정했다. 바쁘니 전화하지 말고 용건은 이메일로 남기라는 무언의 메시지인데 되지도 않지만 그래야 마음이 한결 편하다. 양심껏 급히 처리할 일이 있을 때 이렇게 설정해둔다. 사실 별 의미 없긴 하다.

그간 자리를 비우기 어려웠을 만큼 다사다난했던 탓에, 이제는 다들 익숙해진 재택근무를 작년과 올해 통틀어 딱 한번 해봤다. 그것도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에 확진자가 나왔던 덕분(?)이었다. 그마저 검체검사 결과 음성 판정이 나왔다고 '상황 보고'하니 회사 안전담당 부서로부터 다음날 바로 출근해도 좋다는 답을 받았기에 오피스 탈출은 단 하루의 성공으로 끝이난 바 있다. 회사의 방역지침이 조금 서운했던 기억이 난다.

재택근무는 코로나 팬데믹이 진정되더라도 앞으로 꽤 일상적인 근무형태가 될 테다. 하지만 이에 대한 '어르신'들이나 '동생님'들의 인식 수준은 아직 준비가 덜 된 듯하다. 윗분들은 재택근무 중이라고 하면 노는 줄 알거나 급한 업무 통화를 하다가도 '나중에 출근하면 얘기하자'라고 얘기한다. 본인들이 아직 어색한 거다. 재택근무하는 이들은 상당수가 '잠수'를 탄다. 연락 닿기가 어렵고 이메일에 답이 늦다. 재택근무 '단 1일' 유경험자의 억울한 기분 탓일까. 물론 모두가 그렇게 해이하다는 얘긴 아니다.

재택근무에 대한 인식이나 활용 수준이 좀 더 개선되면 긍정적인 파급이 부정적인 면 보다 더 클 것이라고 본다. 일단 회사는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고 직원들은 교통비 지출과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게 된다. 업무방식은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언컨택트 상황에서도 일이 무리 없이 운영돼야 하니 말이다. '무임승차자'를 걸러낼 수 있다는 것 또한 회사나 개인에게 득이다. 능글맞은 입담꾼, 숟가락 얹기 능력자, '프로회식러' 등은 비접촉 업무 환경에서 그들이 보유한 기량을 맘껏 펼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오전 네 시간 동안 '열일'한 덕에 긴급히 처리해야 했던 일 두 건, 미뤄둔 채 3일간 마음을 불편하게 해왔던 보고서 두 장을 신속히 마치고 나니 점심 식사시간이 되었다. 밥 먹고 보고해야겠다. 코로나 이후 식사 시간대도 팀별 분산 배치되었는데, 우리 팀의 이번 주 식사 시간은 12시 15분이다.

<7월 21일 중복과 점심 삼계탕>

메뉴로 삼계탕을 선택해 줄을 선 뒤에야 오늘이 7월 21일, 삼복(三伏) 중 두 번째 복날인 중복이란 것을 알았다.

하긴 덥긴 요즘 정말 덥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이렇게 더웠었나 싶다. 연도별, 시기별로 평균 기온 변화를 일괄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으려나. 이것도 N사에 물어보면 알 수 있을까. 나중에 찾아보자.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의 장점 중 하나가 삼시 세 끼가 무료라는 점이다. 식사 메뉴도 늘 조리 있게 조리된다. 아재 개그 섞지 않으면 아재가 아니다. 주로 점심만 회사 구내식당에서 먹는데, 석식은 제공 시간이 늦다 보니 이를 위해 퇴근시간까지 늦출 수는 없어서다. 과거 서울 중심가에서 일하던 시절엔 매일 식당이나 메뉴 고르는 게 번거로웠고 밥값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여긴 이 점 하나만큼은 분명 만족스럽다.

13시경 남은 오후 정규 4시간과 플러스 @가 얼만큼인지 가늠이 될 무렵 물을 한 잔 거나하게 들이켰다. 폐쇄된 공간 특히 건조한 사무실에서 장시간 일할 경우 수시로 수분을 자주 보충해줘야 한다. 물을 자주 마시는 습관을 갖게 된 건 올해 잘했다고 여기는 일 중 하나다.

물을 남김없이 다 마신 걸 염탐이라도 한 걸까. 여기저기서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제각각 급한 요청에 '가능한 일정'을 제시해도 모두가 대표님, 임원 지시라며 Top priority를 요구한다. 생각보다 대표님께서 하루 많은 보고를 받으시는 것 같다.

 

늘 신속한 일 처리를 원하지만 도중에 여러 가지 일들과 사람이 개입하기 마련이다. 방해요인이자 불가피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 이건 회사든 회사 밖이든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특히나 회사에서 누군가의 '시간 개입'을 원치 않는다면 퇴사하는 편이 속이 편할 것이다.

받아야 할 건 주저 없이 받고 쳐낼 건 애초에 빠르게 잘라내야 '칼퇴'가 가능할 텐데, 오늘 '칼퇴'는 어려울 것 같다. 반도체 공급 이슈에 시달리는 통에 정규 업무가 계속해서 늦어진다. 본연의 업무는 아니지만 일하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감수해야지 싶다가도 가끔 자괴감을 느낀다.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지'라고 말이다. 요즘 좀 그렇다.

교량 세대라고 하던가. 감수하고 희생해야 할 일이 잦은 소위 '낀 세대'의 고충이다.

15시 10분경, 주식 폐장시간이 다가온다. MTS를 잠시 열어보고 닫았다. 호가창을 자주 열어보지 않고 매매 빈도도 평균 한 달 간격일 정도로 낮은 편이다. 이때부터 출근길 이후 다시 한번 무아지경의 시간으로 접어들던 16시, 예정된 미팅 일정을 변경해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럼 일단은 퇴근을 앞당길 수 있겠다. 근래 영상 미팅이 난무하다 보니 이런 연락은 반갑다.

17시 30분 그만 퇴근하기로 했다. '내일 또 일할 거니까' 퇴근 운전 중엔 하늘이 보였다. 덥긴 해도 푸근한 날씨, 다소 진한 파스텔톤 하늘이며 꽤나 맘에 들었다. 퇴근길 소요시간이 25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것도 도어 투 도어 즉 사무실에서부터 집 현관 도착기준이다. 올 초 새로 난 순환도로 탓에 출퇴근 시간이 편도 10분 이상 줄어든 것에 새삼스레 감사함을 느꼈던 퇴근길이다. 정말이지 막힘없는 길이다.

회사원이 손꼽아 기다리는 D데이는 대부분 짐작할만한 '그날'이다. 내겐 그날이 앞으로 1,600일 남았다. 그래. 나에겐 다 계획이 있는 셈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라고 했던가. 어제와 달라진 점은 무지개가 생기는 원리를 알게된 것 외엔 없는 듯 하다. 내일은 좀 더 다른 날이길 기대하는 것 또한 어제와 다름이 없다. 'D-1600일' 마치 직딩일기와도 같은 이 글은 계획한 그 날이 올 무렵까지 틈틈이 계속될 거다. 그날을 앞둔 이들과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