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리뷰 & 인상파 걸작선 '모네에서 세잔까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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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리뷰 & 인상파 걸작선 '모네에서 세잔까지' 추천

by 보고톡톡 2020.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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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은 책표지에 쓰인 문구처럼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서'입니다. 방구석 미술관 내부로 함께 입장해보겠습니다.  

 

방구석 미술관

조원재 지음

초판인쇄일 2018.08.03

출판사 블랙피쉬

 

 

근래 10만부 판매 돌파를 기념한 '스페셜 리커버 특별판'을 선보이고 있더군요. 제가 이 책을 구입한 후에 이 '프라이빗 미술관 에디션'이 출간돼 시차가 어긋나다보니 만나보지 못하게 된 점 아쉽습니다. 기회가 되면 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보는 것으로 하죠.

 

 

 

근래 맛집과 카페 리뷰에 정성을 기울였더니

지난 4월 추천도서로 소개드린 책들의 리뷰를 마치지 못했어요. 매 시간 매 분 바쁜 저의 일상에 1일 1포스팅의 압박이 꽤 크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잠시 딴 얘기로 빠져, 구글은 왜 애드센스 승인을 안해주는건가요.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이었는지 몰랐다며 연일 투덜대고 있는 참입니다. 혹시 제가 작성하는 포스팅이 구글애드센스 승인 정책에 위배되고 있는 점이 있다면 유경험자님들의 솔직한 조언과 충고를 부탁드리면서, 이제 방구석 미술관 리뷰편 시작할게요.

 

 

미술서적 왜 보나요?

평소 미술서적을 꽤 자주 보는 편입니다. "그림만 감상하면 됐지, 화가며 미술사며 그거 다 알아야해?"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사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보통은 작품을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설명하곤 하죠. 이 것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림을 보면 저마다 감상평이 다 다르죠. 작품을 통해 어떤 인상을 받게 될지는 분명 개인차가 있는 것 같아요.  제 사견도 같습니다. "내가 보는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이 어떤 시간대에 살았으며, 개인적으로 혹은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이 작품을 창작했는지 아는 것은 작품을 해석하거나 아티스트의 마음을 공감하는 데 분명 도움을 줍니다."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

이 책 '방구석 미술관'은 10만부 이상 판매됐다는 점도 그렇고 이미 각종 도서관에도 한 권씩 다 비치되있다보니 많은 분들이 접해보셨을 거에요. 맘 먹으면 세네시간 안에 술술 읽히는 책이어서, 큰 맘먹고 볼 책이 아닌 말 그대로 편하게 볼 만한 책입니다. 사실 이 책은 전에 도서관에서 처음 접했는데, 절반쯤 읽다가 급히 도서관을 나서게돼 덮었다가 잊고 있었더라구요.

 

열 네명의 미술계 거장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각각 이삽십 페이지 분량으로 짤막하게 소개해줍니다. 소개된 열네명의 미술계 거장들의 이름을 참고하세요. 

 

01 에드바르크 뭉크, 1863.12~1944.01
02 프리다 칼로, 1907.07~1954.07
03 에드가 드가, 1834.07~1917.09
04 빈센트 반 고흐, 1853.03~1890.07
05 구스타프 클림트, 1862.07~1918.02
06 에곤 실레, 1890.06~1918.10
07 폴 고갱, 1848.06~1903.05
08 에두아르 마네, 1832.01~1883.04
09 클로드 모네, 1840.11~1926.12
10 폴 세잔, 1839.01~1906.10
11 파블로 피카소, 1881.10~1973.04
12 마르크 샤갈, 1887.07~1985.03
13 바실리 칸딘스키, 1866.12~1944.12
14 마르셀 뒤샹, 1887.07~1968.10

 

 

인상파? 인상주의?

목차에 거론된 아티스트들 대부분은 미술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있는 이들입니다. 거론된 순으로, 에드가 드가,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폴 세잔 이들은 서양 미술사로 볼 때 인상주의 대표 화가로 꼽히는 인물들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각별히 좋아하는 서양 미술 사조가 바로 인상주의(Impressionism) 이겠지요. 

 

인상주의라는 이름은 클로드 모네의 유화 'Impression, soleil levant(우리 말로하면 인상, 해돋이)'를 샤리바리(Le Charivari)라는 잡지의 비평가였던 르로아가 '그저 인상을 그리는 인상파 일당들'이라는 평을 내놓고 야유하면서 그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인상주의를 추구한 화가들은 빛과 함께 시시각각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 색채나 색조가 주는 순간적 '인상'을 이용해 눈에 보이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려고 하는 특징을 나타냅니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2년,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소장

 

인용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상주의, 인상파라는 이름은 좋은 의도로 사용된 말이 아닙니다. 일단 이들의 화풍, 그림들은 뚜렷하지 않은 색감과 선, 윤곽 그 모든 것들이 당시 미술계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괴상한 것들 이었던 거죠. 당시 미술계는 사진을 찍듯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잘 묘사하는 데 그 가치를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모네를 비롯한 소위 인상파 화가들은 머릿속에 있는 관념적인 그림이 아니라 사물을 보고있는 그 순간을 그리고자 했던 겁니다. 지금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할 일이지만 당시 미술계는 이를 비아냥거리며 '인상파'라는 이름 아닌 이름을 붙인 셈입니다. 결국 이 인상파 화가들은 중세의 사실적 묘사에 치중한 화풍에서 근대의 추상화로 넘어가는 길을 연 셈이며 결국 지금의 현대 미술에 까지 이르는 역사적 지평을 열었다 할 수 있겠군요.

 

 

반 고흐, 폴 고갱과의 만남

인상주의 대해 잠시 이야기한 이유는 저 또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러하듯 인상주의 화풍, 미술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의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방구석 미술관》 조원재 작가님의 글을 빌려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해바라기>를 감상해보시겠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1888년

 

책에 있는 그림을 휴대폰으로 담아봤는데요. 해바라기 15송이가 그려진 이 그림은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된 <해바라기>입니다. 반 고흐는 해바라기 그림을 생전에 10개 정도 그렸습니다. 지금은 그 중 7개의 그림만 남아 있으며, 그 일곱 점 모두 전세계 여러 곳의 미술관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림 전체를 온통 노랗게 물들인 것에서 반 고흐가 노랑에 매우 심취해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압생트라는 독한 술에 중독되면서 산토닌을 과다 복용한 반 고흐는 산토닌의 부작용인 황시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바로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증상입니다. 화가가 색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건 저주일 수 도 있으나 반 고흐는 이를 기꺼이 영감의 원천으로 받아들였던 것일까요? 활활 타오르는 노랑을 보기 위해 압생트를 계속 마셔야 했다는 반 고흐, 알코올 중독 수준을 나무란 의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군요.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

 

<해바라기>는 1888년 오랜 설득 끝에 남프랑스 아를로 오기로 한 정신적 지주, 고갱을 기다리는 반 고흐의 기쁨과 설렘이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화가는 사진보다 심오한 유사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던 고흐, <해바라기>는 우리가 알던 해바라기가 아닌 노랗게 타오르는 그의 정열적인 에너지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1888년 10월 23일 부터 함께한 고흐와 고갱은 여러가지 이유로 서로 자주 다투게됐고 결국 고갱이 1888년 12월 23일 고흐의 집을 떠나면서 그들의 동거는 끝이났다고 합니다. 이게 어떤 동거였는지 의아하실 수 있겠군요. 

 

1888년 5월, 고흐가 고갱에게 쓴 편지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고흐와 고갱의 동거 배경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고갱에게,
얼마 전 아를에 집을 빌렸습니다. 남부에서 작업할 마음이 있고, 수도승처럼 살아갈 화가를 찾을 수 있다면.. 저는 매우 기쁠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동생이 보내 주는 돈을 나눠쓰게 될 겁니다. 당신은 내 동생에게 한 달에 한 점씩 그림을 보내주면 되구요.

스티븐 네이페,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 저<판 호흐>인용

 

고갱, 원시와 야생을 동경하다

조원재 작가님의 설명에 따르면 고갱은 스스로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 화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고갱의 꿈이었다면 그의 원래 직업인 증권맨으로 남았을텐데, 그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 혹은 영역을 만들고자 끊임없이 방황했고 결국 '원시와 야생'이라는 자기 예술의 근원을 찾았다는 것이지요.

 

폴 고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타히티입니다. 고갱은 프랑스를 떠나 타히티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 곳의 자연과 원주민들의 모습을 강렬한 색채로 그려낸 것으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예술가의 삶은 기나긴 고난의 길이다! 우리를 살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런 길이리라. 정열은 생명의 원천이고, 더 이상 정열이 솟아나지 않을 때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 가시덤불이 가득한 길로 떠나자. 그 길은 야생의 시를 간직하고 있다." 

 

폴 고갱, <마리아를 경배하며(Ia Orana Maria)>, 1891

 

<마리아를 경배하며(Ia Orana Maria)>는 제목부터 타히티 원주민 언어라고 합니다. 자신이 '원시와 야생' 속에 있는 타히티 사람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인물과 풍경은 분명 타히티를 그리고 있지만 빨간 옷의 여인과 어깨에 올라탄 아이의 모습이 마치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입니다. 조원재 작가님의 설명에 따르면 태초를 꿈꾸지만 여전히 문명을 벗어날 수 없었던 고갱의 처절한 몸부림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고갱은 로맨티스트?

폴 고갱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의 삶의 모습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른바 팩트만 놓고 보면 조금 당황스러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의 출생과 이력을 잠시 살펴볼까요.

프랑스 태생의 폴 고갱은 진보주의 정치부 기자였던 그의 아버지 클로비스 고갱이 당시 격동의 정치적 상황에 놓인 프랑스를 떠나 페루로 이주하기로 결정하면서 젖먹이 시절부터 페루로 건너가 약 6년을 살게됩니다. 1848년 2월 혁명을 치른 프랑스가 공화국으로 선포되었고, 그 해 12월 국민 직접투표로 첫 대통령이 선출되는데 결과는 의외로 나폴레옹의 조카였던 루이 나폴레옹이 당선됩니다. 새로운 지도자를 원했던 진보주의자들에겐 절망스러운 일이었던 셈이죠. 하지만 폴 고갱의 아버지는 프랑스에서 페루로 가던 도중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1848년 6월생인 폴 고갱은 그렇게 1849년 8월 페루로 이주하게 되어 그 곳에서 약 6년간 남미의 뜨거운 태양아래 유년시절을 보낸 겁니다.

 

폴 고갱이 결혼을 한 것은 프랑스에서 증권맨으로 일하던 1873년이었습니다. 1882년 프랑스에 급격한 경기 불황이 찾아오면서 증권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후 서른 셋의 나이에 전업화가가 된 폴 고갱.  이후 그의 아내가 다섯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리면서 홀로 남게 된 고갱, 전업화가가 된 후 경제적으로 꽤 힘든 나날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증권맨으로서 경제적으로 꽤 여유로웠던 직업을 자신이 그만두고 싶어 그만둔 것도 아니고, 화가로 전업한 후 작품이 잘 팔리지 않아 고단했을 그의 삶을 상상해보게 됩니다.

 

반 고흐와의 동거가 끝난 이후 고갱이 향한 정착지, 타히티는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습니다. 프랑스에서 힘들 나날을 보낸 고갱에게 이 곳은 낙원이었나봅니다. 창작의 원천을 찾은 고갱은 이 곳에서 13~14세의 원주민 소녀들과 여러차례 혼인, 동거하며 아이들까지 낳았다고 합니다. 사실 고갱이 타히티로 간 1891년 당시 그의 나이가 43세였으며, 당시 그가 매독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활을 이어갔다는 점은 저의 개념상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사망할 때까지 줄곧 그 곳에서만 살아간 것은 아닙니다. 중간 중간 그의 작품들을 선보이고자 프랑스 파리를 오갔고 실패와 성공을 반복했습니다. 타히티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또다른 어린 원주민 소녀들과 로맨스 아닌 로맨스를 이어갔던 고갱, 그를 보헤미안이라고 표현해야할 지 아니면 좀 더 적합한 다른 단어는 없을지 헷갈립니다. 물론 폴 고갱의 타히티 로맨스는 이 책 <방구석 미술관>에서 다뤄진 내용이 아니며 저는 이미 언급하였듯이 반 고흐와 더불어 폴 고갱의 그림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폴 고갱, <타히티 여인들>, 1891

 

 

모네에서 세잔까지

아주 오랜만에 인상주의 전시회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소개해드립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중인 <모네에서 세잔까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선>이 그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팝아트나 미디어아트 컬렉션 위주의 전시회가 일반적이다보니 이런 인상주의 미술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죠.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길 바래요. 원래 4월중에 전시회가 이미 끝난 줄 알고 아쉬워했었는데 코로나19 영향으로 기간을 연장해서 운영 중이더군요.

 

 

 

<모네에서 세잔까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선>
-기간: 2020.01.17~05.13(수)
-시간: 10:00~19:00 (입장마감 18:00)
-장소: 한가람미술관 제5, 제6전시실
-관람등급: 전체
-가격: 일반 15,000원/청소년(만13세~18세) 12,000원/어린이 10,000원
-문의: 02-6273-4242

 

 

마치며

이 포스팅은 <방구석 미술관>에 소개된 내용과 평소 관심있게 봐온 다른 미술서적들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미술사와 아티스트들에 대한 이야기는 방대한 분량이기에 한번 시작하면 어떻게 마무리해야할 지 좀 난감한 소재입니다. 그만큼 이 책 <방구석 미술관>을 집필한 조원재 작가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나 많은 미술계 거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데 모아 서술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구요. 초심자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이야기를 풀어쓴 것도 그렇습니다. 사실 이 건 교양미술서를 쓰시는 모든 작가님들께 해당하는 찬사이기도 합니다. 이런 류의 책을 즐겨 봐 온 제 입장에선 제가 아는 내용들에 덧대어 읽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앞서 고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덧붙이지 못한 얘기가 있습니다.

 

<방구석 미술관>을 보며 인물에 너무 깊이 심취할 필요는 없다고 권하고 싶어요. 저자의 이야기만 듣고 "아, 이 사람은 정말 열정적인 화가였구나", "이 사람 인간적으로 형편없네" 와 같은 식으로 말이죠. 우리가 보려는 것은 위인전이 아니라 미술관이니까요.

 

'방구석 미술관', 집에서 간편히 만나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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