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진실 혹은 정당성에 귀기울이고 있는가. 우리는 옳고 그름의 판결 앞에 객관적 인지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매우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 한 가지 있는데, 그건 바로 사람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일 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가지가 있는데, '설득당하는 일'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게 바로 요즘 세상 입니다.
○ 우리는 지금 설득되면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여기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들을 잘 정리하고 날카롭게 분석한 소책자가 있습니다.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1788~1860)가 썼고 그가 생전에 발표하지는 않았던 유고이며, 우리 글로 옮긴이는 고려대 김재혁 교수 입니다.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지은이 쇼펜하우어
펴낸곳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제목부터 우리 시선을 강제로 고정시킵니다.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오래 전 대학생 시절인데, 당시 토론술을 주제로 한 철학과 강좌를 수강하러 갔다가 이 소책자를 접했습니다. 마침 올해 2020년 7월에 3판이 발행되던 즈음 우연히 발견해 재구입했습니다. 오래 전이지만 기억 속에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았던 책자.
○ 토론술은 상대를 꺽고 나의 의견을 관철하는데 목적을 둔다.
쇼펜하우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궤변론>과 <토피카>에 바탕을 두고 이 글을 썼습니다. 논리학이 이성에 기반을 두고 진리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면, 토론술은 의지와 감정을 기초로 해서 보편 타당여부와 상관없이 논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혹자는 이것이 매우 의미 없는 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상대방의 논거가 참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게 아릅답기만 하던가요. 우리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납득당할수록 사회적 '인정' 으로부터 멀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 상대의 논거가 완벽한 진실로 여겨지더라도 쉽게 수긍해서는 안된다.
한편 우리는 지기 싫어하는 본능을 띠고 세상에 태어난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자신의 견해에 뚜렷한 확신이 없더라도 끝까지 '자기 소신'을 지켜내야 그 본능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다소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 유형이라고 여겨질 수 있으나, 그 본능을 지켜내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또한 분명합니다.
논쟁 상대방이 제시한 논제 혹은 논거가 사실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아닐지도 모를 상대방의 주장을 순간적인 판단오류나 분위기에 이끌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험은 매우 흔하게 발생합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논쟁에서 이기거나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이유 입니다.
여기까지 논쟁적 토론술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본 것인데요.
○ 쇼펜하우어는 이 작은 책자에 담긴 그의 글을 통해 논쟁의 개별적 소재와 내용은 되도록 제거하고, 논쟁의 틀에 대해 심도 깊은 생각을 정리해나갑니다.
논쟁에서 반드시 이기기 위해 알아야 할 방법 38가지에 대해 알아보기 전 쇼펜하우어가 토론술의 기초에 대해 짤막하게 정리해둔 내용을 반복적으로 리마인드할 필요가 있습니다. 논쟁을 진행하는 화법 두가지와 방법 두가지에 대한 정의 인데요. 방법론 중간 중간 이에 대한 언급이 있기 때문에 머릿 속에 틀을 잡아둘 필요가 있겠네요.
1. 화법
(1) 논쟁의 주제에 초점을 두는 화법 (2) 상대방 혹은 상대방이 시인한 사실에 초점을 두는 화법
2. 방법
(1) 직접 반박 (2) 간접 반박
'직접 반박'이란 상대방이 내세운 근거를 공격하는 것 입니다. 다시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상대가 내세운 근거가 거짓임을 입증하는 것과 그 근거가 결과로 도출되지 않음을 증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간접 반박'은 상대방의 주장을 토대로 도출되는 결과를 공격하는 것 입니다. 여기에는 '간접 논증'과 '단순 반증'의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간접논증이란 상대가 전제한 명제를 통해 결론을 도출할 때 모순이 있음을 보이는 것이며, 단순반증이란 상대방이 진술한 여러가지 개별적인 경우들을 직접적으로 입증하여 상대가 내세운 명제를 반박하는 것 입니다.
○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을 익히고 나면 늘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만 않습니다.
쇼펜하우어 역시 논쟁적 토론술에 있어서 '타고난' 재능을 무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더군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타고나길 논쟁에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논거가 부족하거나 '거짓'인 명제를 가지고도 논쟁에서 늘 승리하는 유전자를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참'인 명제를 가지고도 논쟁에서 패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분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럼 이런 토론술을 익힐 필요가 있는가' 라고 볼 수 있겠네요.
○ 논쟁적 토론술을 익힐 가치는 충분합니다. "당하지 않기 위해"
사실 이 소책자에 담긴 토론술 38가지는 상식적으로 보기 좋은 모습들이 아닌 경우가 태반 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에게 혹은 청중에게 '그게 먹힌다'는 점입니다. 논쟁에 돌입했을 때 상대가 공격해왔던 여러가지 방법들을 잘 생각해보면 이 38가지 토론술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뻔한 공격 방법에 늘 똑같이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바로 이 38가지 토론술에 대해서 말이죠.
쇼펜하우어가 쓴 미발표 유고,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혹은 요령들은 읽을수록 감탄을 자아냅니다. 혼자만 읽고 싶은 책이라고 할 만큼 잘 정리된 논쟁의 틀 그리고 상대를 기만함으로서 논쟁에서 이긴 듯한 모양새를 갖추는데 효과를 더해주는 요령들 까지.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던 내용들을 포괄적으로 잘 정리해냈다고 할까요?
너무 얄팍한 생각이라고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 또한 토론이란 것이 함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그렇게 아름답지만 않기에, 토론술을 잘 익혀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준비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좋은 책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연말 연시 좋은 책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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